그 남자가 무인도에 간 이유

무인도에서 보내는 여행기



무인도를 다닌다. 혼자도 가지만 안전한 무인도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도 한다. 무인도 여행사? 무슨 그런 이상한 사람이 있냐? 그런 이상한 여행사가 있냐? 하지만 벌써 4년이 지났다. 2,800개가 넘는 우리나라 무인도의 구석구석부터 팔라완이나 미크로네시아, 일본, 뉴칼레도니아 등지의 무인도를 다녔다. 무인도 체험 프로그램은 개별, 회사 워크샵, 학교 연수 등 40여 회 동안 500명이 넘게 함께했다.


계기

처음 무인도에 가게 된 계기는 동생과 ‘블루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을 하면서였다. 외국에서는 ‘모노폴리’, 우리나라에서는 블루마블로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핸드폰 게임 ‘모두의 마블’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보드게임이다.


땅을 사고 빌딩과 호텔을 짓고 주사위를 돌린다. 서로의 땅을 뺏고 빼앗는 게임으로, 경제적 가치를 일깨워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땅을 뺏고, 똑같은 게임판을 여러 번 도는 것은 마치 바쁜 사회 안에서 정신 없이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나의 모습 같기도 했다. 더욱이 이 게임에서 무인도 칸에 걸리면 3턴을 무조건 쉬어야 하는데 3턴을 쉬는 동안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화나 영화, 게임에서는 무인도가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무인도가 있을까?’


바로 검색을 했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다는 정보와 해양수산부 통계 무인도가 2,876개라는 것.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무인도가 많다니, 가까운 곳에 한번 가보자.’


첫 여행지

서해에 섬이 많으니 무작정 서해로 가서 어부아저씨를 붙았다. “무인도에 내려주세요. 4일 뒤 꼭 데리러 와주세요.”


아저씨는 잘 아는 무인도가 있다고 하면서 뱃삯을 주면 내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내린 첫 무인도.


하지만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상상했던 무인도는 열매도 있고 숲도 있는 곳이었는데 정작 내린 곳은 바위섬에 자갈만 있는 작은 섬이었다. 이름도 없는 그냥 바위섬에 5분이면 한 바퀴를 걷는 섬. 해변은 없고 안개만 가득했으며 물은 푸른 바다빛이라기 보다는 갯벌의 탁한 물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물에 들어가 뭘 잡아 보겠다고 바다에 들어가고 캄캄해지니 뒷산에 나무를 조금 꺾어 불도 피웠는데 캄캄한 한밤 중 멀리서 섬을 관리하는 배가 파란불 빨간불을 깜빡이며 다가왔던 것이다. 그 분에게 무슨 행동을 했는지 듣고 나서야 많은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선 무인도는 주인이 없지만 우리나라 무인도의 절반은 국가나 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고 절반 정도는 사유지지만 허가 없이 와서는 안 된다는 점과 그렇게 허가를 받아도 무인도 별로 등급이 있어 못 들어가는 곳도 많다는 점이다.


실제 우리나라 무인도들은 크게 절대보전, 준보전, 이용가능, 개발가능 도서로 나뉘어져 있고 어느 등급이냐에 따라 출입이 통제된다. 절대보전 도서의 경우 이름에서 오듯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식물이 서식한다거나 지질학적,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고 개발가능은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고 개발이 가능한 식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섬에서 불을 피우는 것도, 바다에서 무엇을 잡거나 채취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이었음을 그때 모두 알게 됐다.




그렇게 가게 된 외국 무인도

그 뒤로 상상했던 무인도의 풍경의 무인도 속으로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더 커졌다. 구글 지도를 켠 후 위성 탭을 눌러 전 세계 섬들을 확대하며 보기 시작했다. 지도에 마우스를 가져가면 그 아래 다른 사람들이 인근에서 찍은 사진들이 나오는데 그 사진을 참고하면서 보던 중 필리핀 팔라완 인근의 무인도들이 가장 예뻤다.


‘그래, 멀지 않고 항공료도 비싸지 않으니 여기에 가보자. 무인도에 가는 것이니 돈도 별로 안 들겠지.’


가기 전에 팔라완에 살고 계신 한국 분에게 연락을 드려 현지에서 섬주인, 배를 가진 분, 코스트가드, 현지인 친구들을 소개 받았다. 유튜브와 각종 책들을 보며 무인도 생존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무인도에서의 기억

뭐가 가장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아무렴 불을 피우는 일이었다. 힘들어서 포기하려하면 타는 냄새가 나고 팔이 덜덜 떨려 그만해야겠다고 하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또 도저히 안되겠다 생각할 즈음 불씨가 보이고. 그러다보니 7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래도 불이 붙긴 붙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서일까. 결국 7시간 동안 대나무를 비빈 후에서야 겨우 불을 피웠다.


무수히 많은 별들도 단연 인상 깊었다. 왼쪽 수평선에서부터 보이는 별은 반대쪽 수평선까지 그렁그렁 매달려 ‘지구가 정말 둥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무인도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아무 생각 않고 있어보는 것. 나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두고 읽지 못했던 책도 마음껏 읽는 시간. 파도소리와 좋아하는 음악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곳. 무엇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어서 혼자 다른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섬테마연구소의 무인도 투어

무인도에 혼자 그렇게 다녀온 뒤 홈페이지나 SNS에 올렸던 무인도 영상들이 공유에 공유가 되며 수 없이 많은 댓글이 달렸다. ‘저도 무인도 가고 싶은데요’, ‘무인도에 어떻게 가나요?’와 같은 댓글에 하나하나 답글을 다 못 달고 ‘○월 ○○일부터 몇 시 비행기를 타고 팔라완 무인도에서 4박 5일 지내고 올 예정인데 시간 되시면 같이 가시죠’라고 복사, 붙여넣기로 답을 남겼다.


물론 해당 일에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 일은 잊고 지냈다. 출국날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웬걸. 15명을 만나 함께하게 됐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란 생각과 ‘무인도에 가고 싶어하는 이상한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동시에 맴돌았다.


이유도, 직업도, 나이도 모두 달랐다. 리프레시 하고 싶은 분, 혼자 생각해보고 싶은 분, SBS의 TV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보고난 후 와보고 싶었다던 분,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종교계에서 일하시는 분, 초등학생부터 퇴직한 교감선생님까지. 치열하게 살고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반증일까. 우리에게 무인도는 그런 생각을 잠시 벗어나게 하는 하나의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무인도는 가장 외딴 곳에서 우리를 품어줄 수 있는 곳인 건 아닐까. 세상 가장 외진 곳에서 자발적 고립을 택한 우리들이 외롭지 않은 이유다. 재미삼아 ‘무인도에 간다면 뭘 가져가고 싶냐’는 질문에 가장 현실적이고 치열한 고민을 하는 곳도, 가장 나를 잘 볼 수 있는 곳도, 주변과 삶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하는 곳도 바로 이 무인도가 아닐까 싶다.


언젠간 무인도에서 뵙길 바라며, 안타깝지만(?) 인터넷이 되는 한국의 어느 무인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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