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만난 사람들 ③] 넓은 세상에서 실패를 배웠다

세계 최초, 터키·중국·미얀마 트랙터 일주,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내몽골 트랙터 일주 중 (자료: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2005년 11월, 1차 트랙터 협찬 시도: 트랙터 1위 회사 ‘대동공업’ 방문, 협찬 실패!’

‘2005년 11월, 2차 트랙터 협찬 시도: 국회의사당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방문, 협찬 실패!!’

‘2005년 11월, 3차 트랙터 협찬 시도: 노홍철 깃발 협찬, 의형제 맺기 프로젝트 실패!!!’

3년 6개월, 5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일생일대의 찬스가 왔다. 바로 단 한 번의 마지막 트랙터 협찬 프레젠테이션의 기회가 찾아왔다.


4차 트랙터 협찬 시도: 국제농기계 트랙터 회사 방문하기(2008년 3월)

R.O.T.C로 전역을 4개월 앞두고, 3년 전 이루지 못했던 꿈인 ‘The Road to El Dorado - 가슴 속의 황금향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다시 착수했다.이번에는 둘이 아닌 혼자였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큰 부담이었다. 그만큼 더 진지하고 치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해야만 했다. 먼저 수첩에다 프로젝트에 관한 세부사항을 적어나갔다. 


‘트랙터, 경운기, 텐트, 취사도구, 깃발, 스티커, 의류, 특산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여행계획서…’.

각종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대학교 친구와 지인을 통해서 구할 수 있는 대로 전부 모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충분히 할 수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템플릿을 그대로 복사해 요리조리 갖다 붙이면서 감을 익혔다. 그렇게 일주일 밤을 세워 프로젝트 제안서를 만들었다. 한 달여 후 38페이지 분량의 트랙터 여행 계획서가 완성됐다. 


이제는 도와줄 회사를 찾아야 했다. 3년 전 그 회사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내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고,내가 아무리 완벽한 제안을 하더라도 쳐다보지 않을 게 뻔했다.나의 소중한 꿈을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농부인 아버지가 사용하고 있는 트랙터 회사를 찾아 가기로 했다. 적어도 ‘그 회사 트랙터를 사용하고 있는 농부의 아들 이야기는 귀담아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전역 전 남아 있던 휴가를 몽땅 쏟아 부었다. 나머지 3개월간은 휴가를 나오지 못하게 되는,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은 선택’이었다. 


전국 트랙터 일주 중 제부도에서 (자료: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충북 옥천에 있는 트랙터 회사를 찾아갔다. 이번 에도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본사로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큰 실수였다. 회사에 도착해 입구에 들어서니 회장은 물론 한 명의 실무진 조차 만날 수 없었다. 경남 지방에서 열리는 회사 행사에 관련 직원이 모두 참여했던 것이다. 담당 직원이 오지 말라고 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번에는 부딪혀 볼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다.


준비해 온 여행계획서를 국내영업부 차장에게 건넨 뒤 부대로 돌아오는 강원도행 버스에 올랐다. 부딪혀 보기도 전에 좌절된 내 시도에 머릿속은 백지 상태가 됐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억누를 수 없었다. 3개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끝내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때 기다리라는 말을 반복하던 충북 옥천의 트랙터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제안은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크게 깨달은 한 가지가 있었다. 가능, 불가능을 따지는 부서 직원이 아닌 의사결정권자를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면 돌파라는 교훈은 3년이라는 실패의 준비 기간이 나에게 던져준 해결책이었다. 3년 만에 깨달은 것이었다. 


5차 트랙터 협찬 시도: 동양트랙터 회사 방문하기(2008년 8월)

의사결정권자를 만나야 한다는 결론을 품에 안은 채 2008년 6월 30일 만기 전역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차근차근 다시 준비에 들어갔다. 그때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다. 


‘농기계에 관련된 학회에는 농기계 회사 간부가 소속되어 있을 거야. 거기에는 분명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가 나와 있겠지. 그래, 바로 그거야!’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껏 이런 생각을 못한 게 화가 날 정도로 쉽게 농업학회와 농기계학회 홈페이지에서 관련 회사 임원진의 이메일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의사결정권을 지닌 실무자들이었다. 흥분됐다. 그들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내 꿈에 한 발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그들을 만나야 했다. 아니, 전화나 이메일을 이용해 그들과 단 10분이라도 트랙터 여행에 관해 대화를 나누어야만 했다. 


트랙터 협찬 시도 편지글(자료: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트랙터 국토 순례에 관한 프로젝트의 상세한 설명이 담긴 여행계획서와 함께 굳은 의지를 담아 농기계업체 관계자와 농업 관련 학과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정말 답장이 올까? 에이, 설마. 아무것도 없는 청년 백수가 보낸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주겠어? 저명한 교수들인데? 농기계회사 임원들인데?’ 


용기 내어 이메일을 보냈건만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말 놀랍게도 당장 다음 날부터 하나둘씩 답신이 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청년 백수 ‘강기태’를 도와주기 위한 교수가 상당했다. 어떤 교수는 자신이 아는 농기계 업체 회장을 소개시켜주겠다고 말했고 한국 농기계협동조합의 최낙우 이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농기계 업체 실무진의 연락처와 이메일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정말로 감사했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송대빈 경상대학교 교수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내 제안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지적하며 보완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전혀 허황된 꿈이 아닌 굉장한 시도가 될 것이라고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여차하면 농업학과 학생들이 실습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트랙터를 빌려주겠노라며 실패로 인한 상실감을 최소화 시켜주었다. 다들 무모하다고만 했던 꿈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끄러운 대학로 한가운데를 지날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의 호의적인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설렜다. 


“강기태 군? 보내준 제안서는 잘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혹시 내가 누군지 알고 연락을 했나요?”


왜 누군지 알고 연락했냐고 묻는 지 영문을 몰랐다. 아무튼 내가 보낸 제안서를 잘 읽어봤다니 전화기에 입술을 바짝 갖다 대고는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상대방에게 나를 다시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6개월간 트랙터로 국토 순례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제가 쓴 여행 계획서와 이메일을 받아보셨다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사의 트랙터를 타고 우리나라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동양물산의 김래경 이사였다. 한참 동안 내 열변을 듣던 그분은 마침내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군요. 사흘 후 서울 본사로 오세요. 프레젠테이션 준비는 되어 있겠죠? 그럼 그때 봅시다.”


떨렸다. 말 그대로 ‘떨렸다’. 사실 이 작은 성공은 부지불식 간에 저지른 내 실수가 가져다 준 것이었다. LS 트랙터 여행 계획서를 어떤 교수 앞으로 보낸다는 것이 그 업체와 경쟁 관계인 동양물산의 김래경 이사 앞으로 보낸 것이었다. 아무튼 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절호의 기회가 된 셈이다. 아마도 흥미로운 제안을 타사에 뺏기고 싶지 않다는 경쟁심리가 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전국 트랙터 일주 중 정동진에서 (자료: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한고비 넘겨 숨을 돌리자,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다. 바로 프레젠테이션. 이제껏 만들어본 적 없던 파워포인트 계획서에 이어 프레젠테이션이라니! 어느 누구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터라 청중을 상대로 무슨 말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난생 처음인 데다 그것도 서울 청담동 본사에서 9명의 직원을 상대로 하는 프레젠테이션이라니! 그때는 고향인 경남 하동에서 농부의 아버지와 함께 모내기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사흘 후, 경남 하동의 시골 청년은 서울행 버스에 올랐고 동양물산 본사가 있는 서울 청담동으로 향했다. 당당하게 들어선 세미나실. 잠시 뒤 각 부서의 과장급 인사 열 명이 세미나실로 들어섰다. 이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할 차례였다. 떨렸다. 


경남 하동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던 농촌 청년의 프레젠테이션! 그는 과연 어떻게 생전 처음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으며 날카롭고도 매서운 질문들에 어떠한 기지의 대답을 늘어놓았을까? 국내 최초의 트랙터 협찬은 과연 성공했을까? 실패했을까?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의 ‘여행이 만난 사람들’ 트랙터 협찬 실패 스토리는 8월호 ‘국내 최초의 트랙터 전국 일주 (2008년 9월) / 경남 하동 군청에서 특산물 협찬받기(2008년 9월)’에서 마무리 됩니다.


< 저작권자 ⓒ 호텔업,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