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만난 사람들 ②] 파라솔로 노홍철과 의형제 맺다

세계 최초, 터키∙중국∙미얀마 트랙터 일주,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2005년 11월, 1차 트랙터 협찬 시도: 트랙터 1위 회사 ‘대동공업’ 방문, 협찬 실패!’

‘2005년 11월, 2차 트랙터 협찬 시도: 국회의사당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방문, 협찬 실패!!’

협찬을 받기까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크게 ‘5번의 트랙터 협찬 시도’를 감행했다. 물론 계속된 실패였다.




3차 트랙터 협찬 시도(1): 노홍철 깃발 협찬 프로젝트 (2005년 11월)

서로의 두 손을 꼭 맞잡고 심호흡을 했던 적이 많았다. 다양한 프로젝트가 성공으로 이어질 지 아니면 실패의 그늘에 놓이게 될 지,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매 순간 온몸이 긴장됐고 떨렸고 또 떨렸다. 노홍철을 만나러 갈 때도 그랬다. 그 당시 우리는 국내 굴지의 트랙터 회사, 국회의사당을 방문하던 시기였다. 트랙터 협찬? 언론의 협조? 국회의원 찾아가기? 맥주 협찬? 의류 협찬? 다양한 분야로 프로젝트를 시도하면서 점점 발을 넓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원하고 도전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노홍철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기태야, 우리의 정신적 지주! 노홍철 형님을 찾아가자. 형님 얼굴이 그려진 자유의 상징, 홍철 차이나 투어 깃발을 얻는 거야.”

“수환아,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어떻게 하면 홍철 형님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로서는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을까?”


혁명가 체 게바라도 아니고 방송인 노홍철이라니∙∙∙. 당시 ‘자유’ 아니 ‘자신이 알고 있는 자유’를 실천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그가 떠올랐다. 세상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과 유쾌하고도 즐거운 그의 행동방식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의 ‘파라솔 패밀리 우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2015년 10월, 고교 동창 모임이 있던 날이다. 헤어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고 우리는 꽤 취한 상태였다.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더니 순식간에 옷이 흠뻑 젖어버렸다. 그 순간 저 멀리 큰 파라솔이 보였다. 우리는 몰래 파라솔을 집어 들고 우산인 척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 파라솔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원결의의 상징처럼 남아있다.


어느 날, 경상대학교에서 노홍철 씨를 초청해 강연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오전·오후 수업을 모두 포기(땡땡이?!)했다. 친구 수환이도 군대 상관에게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부탁해 하루 외박을 나왔다. 강연은 오후 4시부터 시작되지만 우리가 경상대학교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채 되기도 전이었다. 화창한 날씨에 커다란 파라솔을 들고 있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퍽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강연장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다가올 때면 “여기는 스태프 자리입니다”라고 크게 외쳤다. 철면피처럼 점점 얼굴이 두꺼워지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앉은 채 자장면을 시켜 먹고 맥주를 들이키면서 시간을 보냈다. 학생들이 눈치를 주면 ‘우린 스태프야, 스태프!’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시간이 꽤 흘렀을까. 화려한 말굽 구두와 노랗게 염색한 머리의 남자가 등장했다. 꿈에도 그리던 노홍철 씨였다. 


“아~하하하 여러분, 방가방가. 노홍철이에요.”


TV에서 보던 그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예정보다 이른 등장에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우리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괜히 맥주 캔을 들었다 놨다 하며 파라솔만 애써 매만지고 있었을 뿐이다.


“아~뭐야 뭐야, 강연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맥주? 뭐, 좋아- 가는 거야!”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커다란 파라솔이 그의 시선을 끈 것 같았다. 파라솔을 활짝 펼쳤다 접었다 하며 그의 말에 반응을 보였다. 무슨 용기인지 곧장 무대 앞으로 달려 나가 맥주 캔 하나를 건넸다. 


잠시 뒤, 강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단 0.1초의 지루함도 없이 야외 공연장에 모인 약 2,000여 명의 청중에게 쉴 틈 없이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어느덧 강연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마지막 질문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우리는 입을 다문 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경상대학교 학생들의 질문이 모두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질문하실 분 있어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파라솔을 하늘 높이 펼쳐 올렸다.


“형님, 여기 질문 있습니다.” 얼마나 떨리는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아~하하하, 맥주! 맥주! 너희는 올라와서 이야기하자고.”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뜻밖의 제안에 우리도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우리는 무대에 성큼성큼 올라갔다. 모두들 우리가 누구인지 궁금한 눈치였다. 강연 시작 전부터 커다란 파라솔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형님, 날씨도 더운데 같이 파라솔이나 쓰고 이야기하시죠?”

“하하하~맥주! 맥주! 벌써 다 마신 거야? 아, 정말 특이한 친구들이에요. 좋아~가는 거야. 어디 질문~ 질문!“ 


우리가 바라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그의 얼굴이 새겨진 홍철 차이나 투어 깃발을 얻는 것이었다. 


“아, 형님. 저희는 기태와 수환이라고 해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이번 겨울방학 때 말이죠. 남미에 있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까지 4,000킬로미터를 트랙터, 경운기 있죠? 그걸 타고 달릴 생각이에요.”

“그게 가능할까? 하하하, 경운기~ 경운기~ 멋진 생각이야.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형님 얼굴이 그려진 홍철투어 깃발을 트랙터 앞에다 꽂고 달리고 싶어요. 자유의 상징이라고나 할까요? 해주실 거죠?”

“경운기! 경운기! 그 깃발이 어디 있지? 찾아보면 어디 있을 거야. 아~ 나도 가고 싶다. 이야~하하!”


남미 4,000km 일주를 한다고 외쳤을 때 사람들은 상상을 뒤집는 발상이라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 어이없는 한숨만 내뱉기도 했다. 우리는 곧장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3차 트랙터 협찬 시도(2): 노홍철과 의형제 맺기 프로젝트 (2005년 11월)

바로 노홍철과 의형제를 맺는 것이었다.


“형님과 저희가 2,000명이 넘는 이 사람들 앞에서 의형제를 맺는 건 어떨까요? 이 파라솔 보이시죠? 여기에 형님이 사인을 하고 저희도 사인을 해서 ‘파라솔 의형제식’을 갖는 거죠. 저희 같은 동생을 두는 것도 쉽지 않아요. 형님께서 원하신다면 파라솔에다가 사인하고 서명해주시면 돼요. 하하하.”

“이거 광고 계약 아니지? 의형제? 좋아~ 가는 거야!. 동생들 멋져~. 파라솔 패밀리, 가는 거야~.”


이렇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와 의형제를 맺었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우리는 벌써 남아메리카 트랙터 일주를 이뤄낸 듯 기뻐했다. 


“형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형과 동생 사이에요. ‘파라솔 패밀리’ 절대 잊지 마세요. 여행 다녀와서 책을 출간하게 되면 찾아 뵙고 선물로 드릴게요.”


이렇게 해서 ‘파라솔 패밀리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비록 남아메리카 트랙터 일주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은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깨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강연이 끝나고 홍철 형님은 경상대학교 학생 한 명 한 명과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늘 그렇듯 맨 마지막에 사진을 찍는다. 왜냐하면 마지막 사진 촬영 순간에는 단 몇 마디라도 그와 눈빛을 마주하며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셈이며 준비한 무언가가 있다면 여유롭게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어서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또다시 돌직구를 던졌다. 그에게 마스코트인 빨간색 마티즈 ‘홍카’를 타고 같이 서울로 올라가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오늘은 쿨케이랑 같이 와서 안 된단다. 가만히 보니 저 구석에서 멋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의형제를 맺자고 또다시 들이댔다. 뮤직비디오 감독이자 모델로 유명한 그는 흔쾌히 받아들이며 명함을 주었다. 연락도 없이 지낸 4년 뒤, 나는 그가 만든 의류브랜드에서 트랙터 티셔츠를 판매했고 트랙터 전국 일주 관련 의상을 모두 협찬 받았다. 이날 맺은 인연의 끈이 있었기에 지금의 트랙터 티셔츠가 존재할 수 있었다. 오늘 맺은 작은 인연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의 ‘여행이 만난 사람들’ 트랙터 협찬 실패 스토리는 8월호 ‘4차 트랙터 협찬 시도: 국제농기계 트랙터 회사 방문하기(2008년 3월)’와 ‘5차 트랙터 협찬 시도: 트랙터 3위 업체 동양물산 방문하기(2008년 8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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