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하꼬방
여우가 술 자신 할아비를 홀렸다는 모롱이
난달 길섶에 싸리꽃이 흐드러졌다.
밤새 빗방울에 쓸린 함초롬한 눈망울이
스스러워 스스러워
머언 어느날
빗길을 걸으며
싸리꽃같은 신부도 그러하리라.
밥풀처럼 올망졸망 새끼를 쳐
파란 하늘 풀어 놓은 모롱이 난달 길섶을
싸리꽃 송이송이 채우리라.
-
모롱이: 산모퉁이의 휘어 둘린 곳
난달 : 길이 여러 갈래로 통하는 곳
길섶: 길의 가장자리
스스럽다: 수줍고 부끄러운 느낌이 있다
올망졸망: 작고 또렷한 것들이 많이 벌여 있는 모양 / 귀엽고 엇비슷한 아이들이 많이 있는 모양
마을에서 버스가 다니는 읍내로 가는 길
어린 시절 다들 그러했듯 10리 산길을 걸어다니곤 했다
한길을 따라 가다보면
다른 마을의 가운데를 지나가야 하는 하꼬방길과
골짜기처럼 팬 산모퉁이를 지나는 갈림길에 다다르고
바로 거기 길가에 봄이면 싸리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밤새 가는 비라도 맞은 날이면 파란 잎의 하얀 싸리꽃잎은
싱그러움이 더하였었지, 살짝 수줍은 듯도 하고.
그 싸리꽃을 보며 깨알처럼 수줍은 마음을 품곤 했다.
혼자 지나던 그 길을 언젠가 같이 걸을 누군가가 생긴다면
아마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함께 걷는 내내 그녀의 싸리꽃같은 하얀 얼굴에 부끄러움이 감돌까?
나는 이미 그녀 닮은 아이를 갖고 또 그 아이가 나처럼
그 어미처럼 비내린 싸리꽃길을 걸어가는 꿈을 꾸는데...
- 작자 :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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